제가 하나에 빠지면 사정없이 파고드는 성미라, 왠만하면 드라마는 잘 안건드리려고 합니다. 드라마 한번 빠졌다가 몇 번 조진적이 있어서요. 누가 그랬던가요. 인간은 학습능력이 없는 생물이라고. 2년전이던가 1년전이던가 프리즌 브레이크에 빠졌다가 허우적 댔던 것을 잊지 못하고 또다시 미드에 손을 대고야 말았습니다. 그 이름하여 멘탈리스트! (The Mentalist) 현재 시즌 1이 끝나고 시즌 2가 9월에 나올것이라고 하고 있다지요. 제가 이 드라마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 주 수요일. 그때부터 미친듯이 보기 시작해서 결국 어제서야 시즌 1을 다 보고야 말았습니다. 다 보고 난다음에 뭘까요. 이 뿌듯함은. 간만의 덕질이라 그럴까요.
이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여타 미국 스릴러 드라마와 비슷한 수사물입니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요. 미드 하면 떠오르는 것은 추리, 테러, 스릴러, 살인 이런것들이니까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보다보니 묘한 부분을 자극하더란 말이죠.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멘탈리스트가 재미있는 이유를 몇가지 뽑아 보았습니다.
1. 셜록홈즈식 사건 해결
주인공 패트릭 제인은 뛰어난 직감력과 관찰력, 추리력 등등으로 사기 영매꾼을 해먹다가 레드존이라 불리는 초강력 연쇄살인마한테 걸려서 마누라랑 자식을 한꺼번이 잃은 놈입니다. 그 후 사기 영매꾼을 접고 CBI (캘리포니아 수사국) 의 컨설턴트로 취직(?)하여 사건을 해결하지요. 그는 팀장인 리스본과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그도 그럴것이 불법 침입, 함정 수사, 범인 자극, 최면 등 경찰의 입장에서 하기에 굉장히 껄끄러운 일들을 서슴없이 실행해버리거든요. 사실 그것도 특별히 어떤 근거에 따라 접근 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은 인물입니다. 나름 심리적인 탐구에 기초한다지만, 뭐 시쳇말로 척하면 딱이다.... 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가 미드를 제일 처음으로 접한 것은 CSI였습니다. CSI 는 첨단 과학적 수사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과학수사"의 환상을 심어줄 정도였습니다. 첨단 기기들과 과학적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범인을 오도가도 못하게 철저히 옭아메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러한 기술들이 실존하는 양 찬탄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멘탈리스트의 사건해결 방식은 CSI 와는 꽤나 다릅니다. 친구와 함께 보면서 CBI는 CSI보단 한단계 낮은 수사국인가봐. 라고 말할 정도로 일반 형사물에 컴퓨터 플러스?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패트릭 제인의 동료들은 패트릭 제인에게 각종 자료들을 제공하는 부하라는 느낌이 강했죠.
사실 패트릭 제인의 직관적 추리방식이 낯선 것은 아닙니다. 왠지 낯익죠. 사람의 인상착의, 사소한 버릇, 말투, 분위기, 행동 등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범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사람. 바로 셜록홈즈 입니다.
안녕?
처음 셜록홈즈를 접했을 때가 기억이 나네요. 뭐야 이사람 싶을 정도로 사소한 점 하나만으로도 그사람의 심리, 직업등을 척척 맞추죠. 패트릭 제인도 그렇습니다. 특히 그의 행동은 경찰 보다는 우리가 많이 접한 탐정 추리소설에서 봐 왔던 탐정의 그것과 꽤나 비슷합니다.
사실 CSI는 과학수사 한계(?)상 시청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탐정 수사는 아니지요. 탐정이 발로 뛰고 추리하고, 고뇌하고 그 끝에 범인을 추격합니다. 어떤의미로 보면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2. 미국 스릴러치곤?
미국 스릴러는 보다보면 영화든, 드라마든, 미국 특유의 국가주의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사실 드라마는 다소 약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미국 수사물은 보다보면 "우리는 이렇게 첨단을 달리는 수사 기법으로 당신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어.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이런 과학적인 수사가 중요한 거야. " 라는 생각을 전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 치고는 다소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 면이 많이 보입니다. CSI는 범죄 척결과 사회의 안녕이 모토라면, 멘탈리스트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 강해요. 각기 캐릭터의 특성이 강해서이기도 하겠죠.
패트릭 제인이 수사국에 있는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수사국에서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가족이 레드존이라는 연쇄살인마에게 처참히 난도질을 당했기 떄문입니다. 그는 레드존에게 복수를 하길 원합니다. 반펠트나 릭스비는 비교적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것으로 보이나, 리스본이나 조도 범사회적 기원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덜해요. 음주운전자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리스본은 때때로 피해자의 가족에게 감정이 동화되는 감성적인 측면을 보입니다. 조는 어릴적 소년원 경험이 있지요. 뭔가 사연이 있을 법 하지만 제인 만큼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네요.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집단안의 캐릭터라기보다는 개인이 모인 집단이란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면에서 이 드라마는 미국적 특성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스릴러로서 보여주던 미국적 국가주의 요소는 약합니다. 기본적인 틀은 수사물이지만 왠지 사람같다 라는 느낌이 들어요.
3. 실증주의 속에 녹아있는 신비주의
언젠가 수업시간에 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해 들은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반대의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미국 애들이 아닌 척 하면서 오컬트나 신비주의 같은 것에 잘 빠진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도 약간 미국적 기질을 닮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 신비주의쪽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왜, 스스로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사이비종교에 더 잘 빠진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요?
미국은 과학신봉, 이성주의, 실증주의등 딱 들었을때 다소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사실 CSI 에서 그것이 매우 철저하게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멘탈리스트는 묘하게도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꽤나 많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사기 영매꾼이었으며, 그것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점, 그리고 실제 사건에 영매사와 강신술에 얽힌 사건도 등장하고, 흑마술 관련 사건, 살인마 괴담 관련 사건 등 오컬트적 요소가 등장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제인의 입을 통해 이러한 오컬트적인 요소는 거짓이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컬트적 요소가 사회에 이미 많이 잠재하고 있으나, 스스로가 가진 과학의 힘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고, 해석 가능하며, 아직 설명 되지 않는 것도 언젠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여지를 남겨 놓습니다. 멘탈리스트 7화에는 실제 영매사가 관련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사건은 해결되지만, 약간은 인정하게 됩니다. 마지막에서 영매사가 "부인이 말하길, 아이는 자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됀다. " 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웃으면서 눈물을 참으려는...!!
사실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흥미라면서 오컬트적 요소에 접근하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만, 그래도.... 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한편으로 믿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 괴담보다 "누가 겪었는데..." 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괴담이 인기가 많죠. 으레 들어보면 비슷비슷한데 우리는 그것에 쉽게 매혹됩니다.
특히 작품 내에서 오컬트적인 믿음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그레이스 반펠트라는 팀 내 막내 요원입니다. 그녀는 사기급의 직관력을 보이는 제인을 보고 정말 영매가 아니냐? 고 묻기도 하고, 오컬트적 현상을 부인하는 제인에게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점들을 꽤나 재미있게 생각했습니다. 뭐, 사이먼씨의 장난스럽게 시익 그려주시는 훈훈한 미소또한 빼놓을 수 없지요. 그가 웃으면 저도 따라서 헤벌쭉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흠칫흠칫합니다. -_-;;;